해방 61년,이 나라의 나이가 환갑을 넘었다. 그동안 많은 것을 성취했다. 정치는 민주주의 모양을 갖추었고, 경제는 국내총생산(GDP)규모 세계 제11위의 대국이 됐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생산성은 낮으며,경제는 양극화,사회는 분열로 치닫고 있어 나라 전반에 안정감이 적다.
나라가 이처럼 어지러운데 경제가 이만큼이나마 굴러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기업과 대다수 국민이 건전한 경제생활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가 열리든 말든,데모대가 홍콩에 가든 말든,줄기세포가 있든 없든,민초가 나라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초의 힘만으로 경제가 버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경제당국은 올해 성장률을 성장잠재력 4%보다 높은 5%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어떤 사람들은 올해 성장 5% 이상이 되도록 밀어붙이자고 한다.
아! 그건 안 된다.
밀어붙여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경제다.
지난날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실패한 예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5%든 4%든,중요한 것은 수치가 아니라 그 내용이다.
설사 수출이 잘되고 소비가 다소 는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양극화,고용 없는 성장,중산층의 몰락,서비스산업의 취약 등이 계속된다면,4%든 5%든 큰 의미가 없다.
이제부터는 지도층 (특히 정치 지도층)이 좀 더 잘해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경제가 잘 되지 않는 이유는 경제정책이 경제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논리에 의해 이뤄지는 데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반면(半面)의 진실(half truth)'에 불과하다.
경제정책을 채택하는 것은 경제전문가가 아니고 정치가이며,경제정책은 언제나 정치논리에 의해 추진된다.
경제정책이 잘못된다면,그것은 정치가의 정치논리가 잘못돼 있기 때문이다.
경제책임자가 정책선택을 잘하는 조건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경제 문제에 대한 정확한 현실분석이 있어야 하고,둘째 경제에 관련된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
전자는 전문가의 몫인데 이 나라에는 좋은 전문가들이 많으니 경제분석의 질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후자는 정치가의 몫인데,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좋은 역사의식을 가진 정치가가 이 나라에는 많지 않은 것이다.
경제운영의 책임자가 역사의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지난날의 경험을 거울삼아 앞으로의 선택을 좀더 잘하자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나라의 경험 중에서 몇 가지 사실(史實)을 회고해보자.
한국은 1960년대 제3공화국 당시,'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큰 업적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 업적의 원인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정부가 많은 이노베이션을 도입했고 순리에 따라 민간기업의 사기를 고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이 실패를 낳는 경우가 많다.
3공화국의 성공에 도취한 탓이었을까,유신정권은 잘못된 이노베이션을 도입했다.
경제논리를 무시한 중화학투자를 밀어붙임으로써 나라가 멍들기 시작했다.
절제와 균형을 잃은 무리한 정책이 꼬리를 물었다.
경제에는 고비용,저효율의 체질이 구축됐고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제어할 도리가 없었다.
1980년대 제5·6공화국은 왜곡된 경제를 바로잡을 비전과 정치능력이 있을 수 없었다.
구조문제에 손을 쓸 겨를이 없는 동안 국제경쟁력은 날이 갈수록 약화됐다.
한강의 기적이 '한강의 위기'로 돌변하면서 끝내 국제통화기금(IMF)을 불러들였다.
IMF 치하의 정부는 기업 금융 공공부문 및 노동 등 4대 부문의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면 성장기조가 회복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많은 기업과 금융회사가 쓰러지고 주식시장의 주도권이 외국으로 넘어 갔을 뿐 성장 동력은 간곳 없어지고 말았다.
외환위기를 맞은 지 8년이 되는 지금,일부기업의 체질은 강화된 점도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이 나라의 성장잠재력은 줄어들고 경제구조는 양극화로 치닫고 기업의 투자는 저수준에 있다.
게다가 정치와 사회의 혼란,인구의 고령화,출생률의 격감 등으로 성장동력의 회복을 낙관할 수 없게 됐다.
우리 경제의 활로는 어디에 있는가.
세계의 대국 (大局)을 내다보고,그것에 부합하는 평화와 번영을 향한 정도(正道)를 찾는 데 있다.
세계의 대국(大局)을 살펴보자.세계는 지금 400~500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대 전환기에 처해 있다.
미국경제의 쌍둥이 적자,여타 세계의 흑자,WTO(세계무역기구)의 난항 등으로 표출되는 세계경제의 거시적 불균형은 계속될 것이다.
세계유일의 초대국인 미국이 어떤 세계전략을 추진할 것인가에 따라 세계경제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나,그 영향력은 차츰 줄어갈 것이다.
아시아 경제는 중국과 인도 및 동남아국가연합(ASEAN)을 중심으로 활기 있는 발전을 지속할 것이다.
중국의 개방개혁은 앞으로 더욱 폭넓게 전개될 것이며 서부개발과 동북개발이 적극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일본의 정치 우경화는 이웃나라들과의 마찰을 부추길 것이나 그 경제의 아시아대륙에 대한 의존은 심화되고 있다.
우리가 가야 할 정도(正道)는 무엇인지 짚어보자.우리의 정도는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경제 번영에 기여하는 길이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이 나라의 숙명이요,따라서 당위이다.
이 나라는 나이를 먹고 몸집도 커졌지만 이에 부합하는 성숙성이 없고,황당한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국민의 정서에는 집단적이고 미성숙한 역동성은 있으나,성숙한 개인주의적 합리성은 적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자면 경제정책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단계에 와 있다.
조급한 마음을 접고 한꺼번에 선진국이 될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 나라가 정상적인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다.
경제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된 정책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경제성 없는 비현실적인 정책을 독선적으로 추진하다가 실패한 4공의 교훈,후일의 위기에 대비하지 않다가 IMF를 불러들인 실패의 교훈,외국의 이론을 무조건 받아들임으로써 많은 후유증을 남긴 외환위기 이후의 경험 등은 지금도 반복될 위험이 높은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맹점들이다.
우리 경제의 장래는 아시아의 역동적인 발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에 대한 이 나라의 의사결정은 이미 이루어진 지 오래다.
모든 대기업과 많은 중소기업이 적극적으로 중국과 인도에 진출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아세안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기로 했다.
정부가 단기적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정책 수단은 거의 없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확실히 설정하고 그 것을 구현하기 위한 인적 물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정책의 역점을 두어야 한다.
정부 임무 중의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질서의 확보이며,그것을 확보하기 위한 공권력의 행사는 보장되어야 한다.
교육 의료 연구 및 기타 서비스분야의 개방은 자본시장의 개방보다 더 중요하고 필요하다.
반면 신자유주의 정책을 조건 없이 수용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민간의 반기업정서를 우려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나라에 팽배해 있는 여러가지 '반(反)' 정서 (이를테면,반(反)국회정서 반(反)정부정서 반(反)영호남정서 등)의 하나에 불과하며,대수롭게 볼 것이 아니다.
기업이 진정한 기업정신을 발휘하면 '반(反)'자는 자연히 없어질 것이다.
나라의 지도층은 선우후락(先憂後樂) 정신의 발휘만이 그들의 지위를 보장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리력을 행사하는 무분별한 데모는 금지되어야 한다.
햇볕정책으로 북한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유도될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한꺼번에 통일이 될 것을 바라서도 안 된다.
저쪽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 움직일 만큼 체제와 이념이 신축적이지 않다.
경제 번영을 이루자면 이념에 사로잡히지 말고 모든 문제를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관점에서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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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28년 강릉생
△서울대 상과대
△미국 UC버클리(경제학 박사)
△육사 교관
△서울대 상대 교수
△서울대 사회과학대 학장
△한국국제경제학회 회장
△학술원 회원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
△한국은행 총재
△이화여대 석좌교수
△초대 서울시 민선 시장
△다산경제학상 수상
△제4대 민주당 총재
△제1,2대 한나라당 총재
△초대 민주국민당 대표 최고위원
△명지대 사회과학대 경제학과 석좌교수
△서울대 명예교수
△SK㈜ 사외이사
△바른경제동인회 회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민족문화추진회 회장
◆주요저서
△경제학원론
△한국경제의 현실과 진로(상·하)
△중장기 경제개발전략에 관한 연구
△화폐금융론
△한국경제의 이해
△열린 사회는 휴머니스트가 만든다
△한국경제개조론
△창조와 파괴
원문보기:
https://news.v.daum.net/v/20060103183220993?f=o |